사진/ Harvard Health
대상포진 예방 백신(shingles vaccine) 이 단순히 피부 발진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127만 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2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심장학회 공식 학술지 European Heart Journal 5월호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는 최대 8년간 심장질환과 뇌졸중 발생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으며, 특히 60세 미만, 남성, 흡연·음주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가진 그룹에서 더 큰 효과가 나타났다.
대상포진(herpes zoster)은 어릴 때 수두를 일으킨 뒤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질 때 재활성화되는 바이러스 질환이다. 이번 연구는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50세 이상 인구 집단의 건강 상태를 비교했다.
공동저자인 이하연 연구원(경희의대)은 “대상포진은 혈관 내 염증과 혈전 위험을 유발할 수 있고, 일부 환자에게는 심장 리듬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예방 접종이 이차적 건강 위험도 동시에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 도구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신 효과, 남성과 비교적 젊은 층에서 두드러져
이 연구는 대상포진 백신의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연령과 면역력 수준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젊고 면역 기능이 활발한 집단이 백신 효과를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이 연구는 분석했다.
다만 연구에 사용된 백신은 2020년 이후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생백신’(Zostavax)이었다. 현재는 보다 높은 효과를 가진 ‘불활성화 백신’(Shingrix)이 사용되고 있으며, 향후 백신 유형별 비교 연구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전문가 “가장 강력한 역학 연구 중 하나”
하버드 브리검 여성병원의 역학자 샤론 커한 박사는 “이번 연구는 규모나 통계적 설계 면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대상포진 백신 연구 중 가장 설득력 있다”며 “백신을 접종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스탠퍼드대학의 파스칼 겔드제처 교수는 “비임상 자료 기반 연구이기 때문에 모든 변수 통제가 어려운 한계는 있다”면서도 “실제 환자 집단의 건강 데이터를 이용한 점에서 현실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백신이 비단 감염 예방뿐 아니라 장기 건강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4월 발표한 논문에서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률을 20% 낮춘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이처럼 백신 접종은 뇌와 심장 등 주요 기관에 영향을 주는 신경 염증과 조직 손상을 예방함으로써 전반적인 노화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질병 예방을 넘어선 건강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안미향 기자 [email protected]